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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을 전후로 하여 20세기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에 관한 문헌자료, 한국전쟁기 선교사들의 활동, 전란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미망인과 전쟁고아들을 위한 수용보호 시설들 등에 관한 자료들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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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0 건 페이지 1/1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사진

    조회수39

    해방 Widows Home

    • 간행일불명
    • 발행처
    • 저자
    • 면수1
    • 언어
    • 소장기관권요한(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출처는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보관해온 사진자료에 보관되어 있다. 생성년도는 1957년 11월 1일이다. 크기는 17cm × 12.4cm, 흑백사진이다.

    해방모자원은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전쟁미망인들과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싱계가 어려운 모자가정 수용 보호시설이다. 모자원의 한 사례를 보여주는 해방모자원은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1953년 3월 용산 해방촌에서 모자가정 21세대로 이백산 장로가 설립되었고, 1957년 법인인가를 받았다. 해방모자원의 주소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동 二가 三이고, 원장 이백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사진

    조회수29

    1deaf, 1 blind, Deaf Helen, Blind Kim Wicks

    • 간행일불명
    • 발행처
    • 저자
    • 면수1
    • 언어
    • 소장기관권요한(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출처는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보관해온 사진자료에 보관되어 있다. 생성년도는 불분명하다. 크기는 8.7cm × 6.8cm, 흑백사진이다

    도로시의 사진첩에는 장애아동과 혼혈아 고아에 관한 사진기록들이 들어있다. 사진 〈1deaf, 1 blind, Deaf Helen, Blind Kim Wicks〉은 맹인고아 김윅스가 청각장애인 고아 헬렌 최(Helen Choi)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의 뒷면에 도로시는 김윅스가 빌리 그래함과 함께 노래하고 있다는 내용을 메모해 놓았다. 김윅스는 도로시의 기록에 의하면 헬렌은 청각장애인이면서 백인혼혈아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김윅스는 전쟁고아로 미국으로 입양되어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6.25 전쟁 때 3살이었던 김윅스는 전쟁 중에 실명을 입었고, 홀트양자회의 주선으로 10살 때인 1957년 미국 인디애나주 데이턴의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홀트의 친구인 조지 윅스 부부 가정에 입양됐다. 미국의 유명한 음악학교인 인디애나 주립대학를 졸업하였고, 풀브라이트(Fulbright Scholarship) 장학금을 받아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여 성악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음악 전도사역을 하였다. 1974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1984년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대회 여의도집회 때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의 음악팀의 성악가로 활동했다.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사진

    조회수20

    Ann in frog cast

    • 간행일불명
    • 발행처
    • 저자
    • 면수1
    • 언어
    • 소장기관권요한(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출처는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보관해온 사진자료에 보관되어 있다. 생성년도는 불분명하다. 크기는 9cm × 11.5cm, 흑백사진이다

    전후에 전쟁고아들 가운데 버려진 장애 아동들이 많았다. 도로시 선교사는 장애아동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면서 만난 앤에 관한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앤(Ann)이라는 장애아동은 생후 9개월에 버려졌는데, 후에 외과수술을 받아 정상인의 모습이 되었다. 미국으로 입양되어 미국의 한 가정에서 양부모와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있다. 이 사진은 “개구리다리 교정 깁스를 하고 있는 앤의 모습이다. 이 이야기는 『코리아콜링(Korea Calling)』 기사(1970. 11. 9 접수)에도 실렸다.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사진

    조회수23

    Homeless

    • 간행일불명
    • 발행처
    • 저자
    • 면수1
    • 언어
    • 소장기관권요한(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출처는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보관해온 사진자료에 보관되어 있다. 생성년도는 불분명하다. 크기는 9cm × 9cm, 흑백사진이다.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의 부인 도로시 킨슬러(Dorothy Wehmann Woodruff, 권도희, 1907-2001) 선교사는 한국전쟁 직후에 전시에 발생한 전쟁고아 고아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면서 전쟁고아의 실상을 보여주는 많은 사진자료들을 남겼다. 〈Homeless〉 사진은 6명의 남녀 아이들이 헝클어진 머리, 남루한 겨울 옷차림에, 고무신을 신었고, 한 아이는 맨발로 서 있다. 도로시는 사진 뒷면에 아이들이 남쪽으로 긴 피난 도중에 길을 잃어버려 집 없는 아이들이라고 기록하였고 625라는 숫자가 찍혀있다.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사진

    조회수19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 Truck

    • 간행일1950-1953
    • 발행처
    • 저자
    • 면수1
    • 언어
    • 소장기관권요한(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출처는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보관해온 사진자료에 보관되어 있다. 생성년도는 1950-1953경이다. 크기는 10.16cm × 12.7cm, 흑백사진이다.

    한국전쟁기에 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 소속의 몇몇 선교사들은 한국에 남아서 전재민 구호활동을 했다. 그들은 부산의 한 교회에 구호본부를 설치하고 약 6만여 명의 피난민들을 위한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쳤다. 사진 〈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의 구호활동, 미션트럭〉은 선교사들이 선교부 트럭으로 피난민들을 수송하고 있는 광경이다. 사진에서 아래 정면에 있는 선교사가 부례몬 선교사와 필립스 선교사이다.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사진

    조회수18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보켈선교사

    • 간행일1952-1952
    • 발행처
    • 저자
    • 면수1
    • 언어
    • 소장기관권요한(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출처는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보관해온 사진자료에 보관되어 있다. 생성년도는 1951-1952년경이다. 크기는 10.16cm × 12.7cm, 흑백사진이다. 보켈 선교사(Harold Voelkel, 옥호열, 1898-1984)는 예배와 성경공부반 등을 운영하며 전쟁포로들을 섬겼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에는 약 6,000여 명의 전쟁포로들이 예배와 성경공부에 참여했다.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사진

    조회수20

    Harold Voelkel Pow

    • 간행일1951-1952
    • 발행처
    • 저자
    • 면수1
    • 언어
    • 소장기관권요한(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출처는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보관해온 사진자료에 보관되어 있다. 생성년도는 1951~1952년경이다. 크기는 10.16cm × 12.7cm, 흑백사진이다.

    보켈 선교사(Harold Voelkel, 옥호열, 1898-1984)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군목으로 활동하며 북한의 전쟁포로들과 가장 긴밀하게 지내면서 전쟁포로들의 생활을 목격했다. 이 사진은 전쟁 포로들에 에워싸인 보켈 선교사의 모습을 담고 있다.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사진

    조회수21

    Harold Voelkel Chaplain

    • 간행일1950-1953
    • 발행처
    • 저자
    • 면수1
    • 언어
    • 소장기관권요한(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출처는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보관해온 사진자료에 보관되어 있다. 생성년도는1950-1953년경이다. 크기는 8.5cm × 10.8cm, 흑백사진이다.

    선교사 보켈(Voelkel, 옥호열, 1898~1984)은 1929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내한했다. 그는 38년간 한국에서 사역했다. 그의 사역들 중에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전쟁 기간에 군목으로서의 활동이었다. 그는 전시에 북한의 평양과 원산에 파견되어 그곳 상황을 보고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또한 1950년 12월 함흥의 흥남 철수 작전을 도왔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활동하면서 전쟁포로들의 생활과 포로수용소의 내부 상황들을 사진기록으로 남겼다. 이 사진은 전시 상황에서 군복차림을 하고 있다.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단행본

    조회수19

    Annual Report, Francis Kinsler, July 17, 1953

    권세열(Francis Kinsler), 한국전쟁(Korean War), 선교구호자금(Mission relief Money), 성경구락부(Bible Clubs), 장로회신학교(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전쟁 고아원(War Orphanages)

    • 간행일1953. 7. 17
    • 발행처
    • 저자Francis Kinsler
    • 면수2
    • 언어영문
    • 소장기관권요한 (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연례 선교보고서, 프랜시스 킨슬러, 1953. 7. 17”은 권세열(Francis Kinsler) 선교사 가족이 기증한 자료들에 들어 있는 문서이다. 한국의 선교사로 활동했던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작성한 연례 선교보고서이다. 이 자료의 형태는 22cm × 28cm, 총 2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어로 작성된 문서이다. 발행년도는 1953년 7월 17일에 생성되었다. 자료의 내용은 한국전쟁 종료 직후 남한에서 지난 1년간의 사역을 종합하여 보고하고 있다.

    그 내용은 한국선교회의 인사이동으로 인한 인력 부족과 가중된 업무들이 기술되어 있다. 킨슬러 선교사는 아담스 박사(Dr. Edward Adames)의 현장 복귀로 한국선교회 집행위원장 직위에서 물러났지만, 그와 동시에 캠벨 박사(Dr. A. Cambell)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장로교신학교의 총장 대행 업무를 맡게 되었다. 대구에서 사역하였던 선교회의 회계담당자 제임스 필립스(James Philips) 씨도 미국으로 귀국하자 대구 선교지부의 인력 부족 현상이 더욱 심화 되자 일본에 체류하던 킨슬러 부인이 두 아들을 미국으로 학교를 보낸 후 한국으로 건너와 동역하면서 인력 부족을 만회할 수 있었다.
    킨슬러 선교사의 업무는 선교지부 내부의 업무들 외에도, 교회 지도자들, 장로회신학교의 학생들, 성경구락부 지도자들의 방문과 만남 등을 기술하고 있다. 장로회신학교의 약 500여명의 학생들이 안고 있는 절박한 경제적 필요 사항들, 군대 징병요건, 교원, 학생들의 학습 수준, 정부와의 협상, 구호물자와 구호자금의 현명한 배급 등의 어려문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빈곤 아동을 위한 성경구락부의 활발한 활동과 45,000명에 이르는 성장을 보고하고 있다. 또한 대구와 인근 지역에 약 20개의 전쟁 고아원과 접촉하여 지원과 구호품 배급 활동이 이뤄졌다. 그와 함께 대구 피난민센터에서 지속되는 구호사업과 전쟁미망인들의 활동이 소개되고 있다. 대구지역에 대명과 북부 피난민센터에 설치된 보육원, 베다니 모자원 작업장, 맹인학교 운영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대구지역 피난민센터에서 선교사와 기독교가 어떤 활동과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문서이다.
  • 農民生活 第十二卷 第四號(第百二十四號)

    단행본

    조회수20

    KOREA – THE SHRIMP AMONG WHALES

    권세열(Francis Kinsler), 동아시아(East Asia),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 이승만(Syngman Lee), 김일성(Kim Il Sung), 한국전쟁(Korean War)

    • 간행일1988년이전
    • 발행처
    • 저자Francis Kinsler
    • 면수2
    • 언어영문
    • 소장기관권요한 (Francis Kinsler 선교사 손자)

    권세열(Francis Kinsler) 선교사 가족이 기증한 자료들에서 킨슬러 관련 자료들에 들어있다. 한국의 선교사로 활동했던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작성한 선교보고서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한국”이라는 제목하에 2쪽짜리 분량으로 된 국제관계 속 20세기 한국의 역사에 관한 자료이다. 이 자료의 형태는 21cm × 28cm, 총 2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어로 쓰여진 문서이다. 발행년도는 1988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내용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국제관계 속에 얽혀 들어가 거의 2천 년 넘게 강대국 외세의 영향력과 압력, 위협과 침략을 경험해 오고 있는 한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전체 두 개의 소제목 ‘I. 2천 년 동안의 하나의 한국, II. 1945년 이후 두 개의 한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I. 2천 년 동안의 하나의 한국’에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한국의 속담을 인용하면서 아시아 전문학자 데이비드 스타인버그(David I. Steinberg)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다. 즉 한국은 2천 년 넘게 동아시아 열강들 사시의 국제관계 속에 얽혀 들어가 피해를 입은 새우에 빗대어 연결시키고 있다. 이 속담이 의미하는 바는 외세의 영향력과 압력, 위협과 침략을 받은 약소국 한국의 상황을 시사한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교차로에 위치한 반도 국가이고, 크기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약 800마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약 150마일이다. 한국을 둘러싼 고래는 강대국 중국, 일본, 러시아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에 의해 한국이 병합되어 식민지가 되었고, 한국은 고통받는 “새우”였다. 한국은 망했지만 망하지 않았다.
    ‘II, 1945년 이후 두 개의 한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관계의 재편과 한반도의 역사 전개를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전후의 전략 수립을 위한 루즈벨트(Roosevelt), 처칠(Churchill), 스탈린(Stalin)의 얄타회담(Yalta) 개최, 일제의 패망, 북한에 러시아군과 남한에 미군 주둔, 38선과 신탁통치안, 남한 인구 2천만 명과 북한 인구 약 1천2백만 명 대비,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남한의 이승만 정부 수립,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 이루어졌다.
    약 4천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의 삶에서 주목할만한 세 가지 점이 있다. 첫째,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반공의식이 강한 민족이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최소한 400만 명이 남한으로 피난을 왔다. 1950년 여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졌다. 둘째, 한국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자 우방국이다. 지난 100년 동안의 선교운동은 한국에 교육, 의학, 과학 분야 및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 셋째, 남한 사람들은 반공주의자이자 친미주의자이며, 남한의 재건과 경제발전을 이룩한 사람들이다. 한국전쟁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에서 1,700달러로 증가했다. 약 100개의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 한국은 두 번째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1988년 올림픽 개최를 고대하고 있다.
    이 선교보고서는 20세기 한반도의 역사 전개과정을 순차적으로 설명하며, 한반도에서 남한이 왜 반공주의자들이고 미국과의 관계가 동맹국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속에서 지난 100년 동안의 선교운동이 한국사회에 기여한 업적들을 보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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