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열(Francis Kinsler), 한국전쟁(Korean War), 선교구호자금(Mission relief Money), 성경구락부(Bible Clubs), 장로회신학교(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전쟁 고아원(War Orphanages)
“연례 선교보고서, 프랜시스 킨슬러, 1953. 7. 17”은 권세열(Francis Kinsler) 선교사 가족이 기증한 자료들에 들어 있는 문서이다. 한국의 선교사로 활동했던 프랜시스 킨슬러 선교사가 작성한 연례 선교보고서이다. 이 자료의 형태는 22cm × 28cm, 총 2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어로 작성된 문서이다. 발행년도는 1953년 7월 17일에 생성되었다. 자료의 내용은 한국전쟁 종료 직후 남한에서 지난 1년간의 사역을 종합하여 보고하고 있다.
그 내용은 한국선교회의 인사이동으로 인한 인력 부족과 가중된 업무들이 기술되어 있다. 킨슬러 선교사는 아담스 박사(Dr. Edward Adames)의 현장 복귀로 한국선교회 집행위원장 직위에서 물러났지만, 그와 동시에 캠벨 박사(Dr. A. Cambell)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장로교신학교의 총장 대행 업무를 맡게 되었다. 대구에서 사역하였던 선교회의 회계담당자 제임스 필립스(James Philips) 씨도 미국으로 귀국하자 대구 선교지부의 인력 부족 현상이 더욱 심화 되자 일본에 체류하던 킨슬러 부인이 두 아들을 미국으로 학교를 보낸 후 한국으로 건너와 동역하면서 인력 부족을 만회할 수 있었다.킨슬러 선교사의 업무는 선교지부 내부의 업무들 외에도, 교회 지도자들, 장로회신학교의 학생들, 성경구락부 지도자들의 방문과 만남 등을 기술하고 있다. 장로회신학교의 약 500여명의 학생들이 안고 있는 절박한 경제적 필요 사항들, 군대 징병요건, 교원, 학생들의 학습 수준, 정부와의 협상, 구호물자와 구호자금의 현명한 배급 등의 어려문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빈곤 아동을 위한 성경구락부의 활발한 활동과 45,000명에 이르는 성장을 보고하고 있다. 또한 대구와 인근 지역에 약 20개의 전쟁 고아원과 접촉하여 지원과 구호품 배급 활동이 이뤄졌다. 그와 함께 대구 피난민센터에서 지속되는 구호사업과 전쟁미망인들의 활동이 소개되고 있다. 대구지역에 대명과 북부 피난민센터에 설치된 보육원, 베다니 모자원 작업장, 맹인학교 운영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대구지역 피난민센터에서 선교사와 기독교가 어떤 활동과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문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