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치휘편(格致彙編)"은 청나라에 주재하던 서양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서구의 과학기술을 소개할 목적으로 출판한 월간 잡지다. 1876년(청나라 연호, 광서2년) 2월호를 시작으로 1882년 1월까지 매월 정기적으로 간행되었고, 이후 1890년부터 1892년까지는 계간지로 전환됐다. 특히 "격치휘편"은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한 후 관료들을 중심으로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하는 양무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창간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발행인을 맡은 존 프라이어(John Fryer, 한자이름 傅蘭雅)는 영국 성공회에서 파견된 선교사로 과학과 더불어 한학에도 조예가 깊어 28년간 강남제조국편역(江南制造局編驛)으로 활동하며 143권에 이르는 서구 과학기술 서적을 중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격치휘편"은 서구 각국의 과학발달을 소개하는 비교적 가벼운 잡설에서부터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의학과 같은 과학 이론을 상세히 설명하는 기사들은 물론 광물, 농업, 전기, 기계, 군사무기, 기기제조, 인쇄, 철로, 방직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과학기술 전반을 매우 폭넓게 다뤘다. 특히 설명과 함께 상세한 도판들을 다양하게 실어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를 도왔다.동아시아 최초의 월간 과학기술 잡지로서 "격치휘편"은 조선에까지 유통되었는데, 지석영은 1882년 고종에게 올린 상소에서 "격치휘편"을 거론하며 서구 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제도 정비를 주장한 바 있으며, "한성순보"는 "격치휘편" 의 내용 일부를 주요 기사로 수록하기도 했다. 또한 1896년에 창간된 "대조선독립협회회보"는 "격치휘편"의 기사들을 창간호부터 다시 선별해 중요 내용을 소개했다."격치휘편"은 청나라에서 10여 년간 월간으로 발행된 잡지인 만큼 그 양이 방대해 전편을 구비해 소장하기 어려운 형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숭실대학교 박물관 등이 각각 그 일부씩을 소장하고 있다.